1. 더 늦어서는 안 되겠다는 싶은 마음에 늦은 시간이었지만 옷을 갈아입고 운동장으로 향했다. 텅빈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주위가 온통 깜깜한 가운데 사실 약간의 오싹함을 느꼈다. 누군가 있는 것만 같은 그런 느낌, 을 받았기 때문이다. 마음 속으로 '설령 그렇다면 나랑 같이 뛰자, 여럿이라면 줄 맞춰. 2열 종대다.'하고 서서히 달리기 시작했다.
2. 내 기억이 맞다면 8년 전 3월 4일, 나는 첫 강하를 했다. 내가 알고 있는 가장 큰 위험에 가까이 갔던 날, 깜깜한 새벽에 일어났던 것과, 운동장 만큼 넓은 식당에서 고요함을 느끼며 아침을 먹었던 기억, 버스를 타고 비행장으로 가던 기억, 까마득한 활주로에서 달리기를 하며 몸을 풀던 기억, 수트를 착용하고 내 차례가 올 때까지 하염 없이 하늘을 바라보던 기억, 차례차례 줄을 서서 기체로 들어가고, 이윽고 뜨거운 기운과 함께 땅이 점점 멀어지던 모습을 보던 기억, 이윽고 문이 열리고 허공을 향해 한 사람씩 사라지던 기억, 내 차례가 되어 사실은 어쩔 수 없이 허공으로 점프할 때의 그 느낌, 낙하산이 펴지고 땅이 가까워지던, 그렇게 우려했던 착지는 땅에 발이 닿으려는 찰나 앞에서 바람이 휙 불어와 비탈길에 스륵 안기듯 내려와 조금의 충격도 없었던 기억까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계속 주변을 맴돌지는 않지만 그 순간으로 기억의 화살표를 돌리면 생생하게 떠오르는 그런 풍경들이 있었다.
3. 달리는데 왠지 그 날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시간을 다시 거슬러올라가 1999년 가을, 다음 날 시험을 앞두고 부족한 준비에 마냥 막연해 하다가 우연히 들은 노래 덕분에 의지가 충천해 부리나케 공부를 했던 때의 모습들도 기억이 났다.
내 부족함과 성격적인 탓이기도 했으나 다른 이에게 기대지 못했을 때, 늘 응원의 메시지를 주었던, 어떤 의미에서는 좀 낯간지럽지만 꾸준히 하나씩 모아온 그 노래들을 들으며 달렸다. 참 신기한 것은 1999년에 들었을 때와 12년이 지난 2011년에 들을 때에 느껴지는 것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 하고 신기해할 때가 있다.
4. 오랜만의 달리기라 쉽지는 않았다. 속도를 낼 수도 없었고, 어떤 때는 오른 무릎이, 조금 후에는 왼쪽 무릎이 뻐근한 것 같았고, 발바닥이, 발등이 불편한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 노래들은 나에게 계속 같은 목소리로 외치고 있었고 나는 조금 더, 조금 더 달렸다.
5. 문득 내가 서른 살이라는 것을 되새김질 할 때 마다 드는 생각은 '벌써'라기 보다는 '아직도 멀었다'라는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의 부족함에 대한 한없는 갈증이다. 난 언제쯤 스스로의 풍부함을 느낄 수 있을까. 무언가를 알면 알수록 더해가는 것은 그것을 내가 분명히 아는가 라는 자문과 공허함이다. 누군가의 가벼움을 느낄 때와 누군가의 깊고 풍부함을 느낄 때 나는 동일하게 나 자신을 돌아본다. 그렇다면 나는 가벼운가, 풍부한가. 이 궁금증은 과연 풀리게 될 수 있을까.
6. "어쨌든 파이팅"이 모토인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심하게 넘어져 너무 아파서 "때로는 웅크림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런데 너무 웅크리다 보니 모든 것들을 쉽게 포기하게 되었다. 그래서 "견딜 줄 알아야"하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대체 어쩌란 말인지. 시간이 흐르고 그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 때론 웅크리고 때론 견뎌야 함을 배우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그 "때론"에 대한 판단은 불문명하고 스스로 그것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다. "아직도"인 이유가.
7. 달리기를 마치고 돌아와서 강하할 때 남겨둔 기록을 다시 보려고 찾았는데, 보이지 않았다. 문제다. 평소에 무심코 쉽게도 보이던 것들이 막상 찾으려고 하면 없다. 그래서 그것을 찾느라 몇 배의 시간을 보내게 되고, 결국 찾으면 그것은 굉장히 무심한 자리에 놓여 있는 것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간소함을 따르려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는 이유는 필요한 것들을 찾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사용하지 않기 위함이기도 하다고.
그런데 각별하게 챙겨둔 그로부터의 서신들이 보이지 않았다. 1994년, 2003-2004년, 그리고 최근까지의 서신들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당황해 몇 시간에 걸쳐 책상을 계속 뒤졌고, 결국 거기엔 분명히 없다고 확신해서 확인하지 않았던 그 자리에서 찾았다. 허탈했지만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8. 이 세상은 너무 넓다. 그런 세상에 대해 읽고 생각하고 쓰고 말한다는 것이 어떤 일인가에 대해, 그러기 위해 세상을 품는다는 것에 대해 나는 생각한다. 서른 살이라는 삶의 이정표 위에서, 내가 선택한 길 위에서, 나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지. 생각해 본다.
그동안 내가 향하려 했던 길들은 어떤 커다란 목표를 향한 것은 아니었다. 무언가 내 앞에, 내 곁에 다가와서 그것을 내가 선택했을 때, 나는 그것에 최선을 다하려 했고, 그것을 통해 재미를 느끼고자 그것을 통해 행복해지고자 노력했다. 나는 여전히 무언가 고정적인 것을 추구한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무엇이 나타날지 내가 예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령 그렇다면 그건 참 재미없는 일일 것이다. 마치 직구를 던질지, 무슨 변화구를 던질지 예정되어 있어서 타이밍만 맞추어 방망이를 휘두르면 되는 것과 같을 것이니 말이다.
9. 서른 살이 된 나에게 내가 바라는 것. 겸손할 것. 그리고 호기심을 가질 것. 가급적 긍정적일 것.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할 것. 지금 있는 자리에 안주하지 말 것. 경계에 다가서고 때로 그것을 넘어서기를 두려워하지 말 것, 마지막으로 유머를 잃지 말 것.




